지난 편에 살펴보았듯 일반적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은 덜 중요하게 취급되어 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폴라로이드 사진의 한계와 가능성을 
철저하게 탐구한 사진가들도 적지 않지요. 

또 이른바 일상성과 스냅샷의 가치의 재발견 이후 
폴라로이드 사진 역시 제도예술의 울타리로 흡수되게 됩니다. 
 폴라로이드의 가능성은 정확히 그 한계와 일치합니다. 
단지 그 한계를 한계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가능성을 찾아내느냐의 차이겠죠.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폴라로이드의 작은 크기는 

오히려 사진가와 대상, 혹은 사진과 감상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만약 친밀성을 강조하는 작품을 추구한다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겠지요. 


또 정방형이라서 세로사진이나 가로사진을 만들기 힘들지만, 

모든 사진이 동일한 형태를 가지므로 

오히려 시리즈 구성을 할 때 좀 더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폴라로이드 사진이 정확한 색 재현보다는 

뭔가 좀 부옇고 때로 특정색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요즘처럼 레트로한 70, 80년대 컬러가 유행인 시대에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이제 진짜 폴라로이드는 생산을 중단했지만 

흥미롭게도 스마트폰 카메라 앱인 

인스타그램이나 힙스타매틱이 폴라로이드 사진의 색감을 

어느 정도 흉내내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문제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과연 내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의도를 잘 반영할 수 있는 도구일까를 고민하는 게 낫겠죠. 


폴라로이드의 크리에티브한 측면을 추구한 사진가들, 

먼저 앙드레 케르테스(Andre Kertesz)의 사진들부터 보지요. 

이 흑백사진을 주로 다뤘던 대 작가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조차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사진의 모든 것은 케르테스가 이뤘고 우리는 그저 따라할 뿐, 이라는 

취지로 말한 적도 있었지요.)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사후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을 떠나 뉴욕에 사는 향수를 담아낸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걸작이라고 칭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폴라로이드만이 담아낼 수 있는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링크 바로 가기: 앙드레 케르테스 


사진가라기보다 그저 예술가라는 호칭이 더 적합할 

영국의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는 

사진으로 엮는 콜라주로 큐비즘을 재해석했는데요, 

물론 폴라로이드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주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링크 바로 가기: 데이빗 호크니 (1) 


그는 '보는 방법'과 '매체에 대한 자의식'이라는 면에서 

어쩌면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의 한 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여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링크 바로 가기: 데이빗 호크니 (2) 


마찬가지로, 포트레이트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척 클로스(Chuck Close) 역시 데이빗 호크니와 얼핏 유사하지만 

그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폴라로이드를 사용합니다. 

특히 폴라로이드 사는 종종 작가들을 위해 

특수한 판형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제작하곤 했는데, 

그의 셀프 포트레이트에 이용된 필름은 

20인치 x 24인치의 초대형 포맷이었습니다. 

안셀 아담스도 같은 포맷의 폴라로이드로 촬영한 사진이 존재하죠. 

링크 바로 가기: 척 클로스 


특히 척 클로스의 포트레이트에 있어 

최종 작품의 크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마 링크를 들어가시면 대략 첫번째 줄에 

감상자와 작품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이 있을텐데요, 

실제의 얼굴보다 엄청나게 큰 사진은 이미 이 작품이 

실제의 완벽한 재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실재(the real)와 그 재현(representation)의 관계, 

혹은 이미지가 실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당연하다는 상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또 어느 정도는 그 관계를 유희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다룰 이는 매우 독특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셀프 포트레이트였는데요, 

일단 이미지부터 좀 보고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링크 바로 가기: 루카스 사마라스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셀프 포트레이트들이지만, 

셀프 포트레이트라는 장르는 단지 해당 예술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보다는 한 예술가의 창의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하기 마련입니다. 

루카스 사마라스(Lucas Samaras) 역시 가끔은 

좀 장난스럽기도 한 사진의 내용과는 별개로, 

폴라로이드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합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촬영한 뒤 필름이 카메라 밖으로 빠져나오면 

그때부터 현상이 시작되죠. 

대개 1분 30초에서 2분 정도 걸리는 현상시간 동안, 

루카스 사마라스는 폴라로이드의 표면을 때로는 붓으로 문지르고, 

뾰족한 물체로 긁는 등 다양한 변형을 가합니다. 


그러니까 이 자화상-사진들은 

그 자신의 외양(appearance)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도구로서 매체(medium)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매체를 다루는 방식'과 그에 대한 '자의식(self-conscious)'은 

현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어찌 보면 이 포스트에 제가 사진을 감상하면서, 

또는 만들어내면서 하는 고민들이 얼추 다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는 방법과 매체를 다루는 방법, 그리고 최종적인 작품을 

어떤 식으로 대중에게 보여줄 것인가, 등의 이야기, 

앞으로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을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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