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의 포스트가 꼭 논리적으로 

전편과 다음 편이 맞물리게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왕 '복제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니 
폴라로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지요. 

무릇 예술상품 뿐 아니라 대개의 상품이, 
똑같은 것이 여러 개 존재하는 것보다는 
세상에서 유일한 것, 또는 희소한 것이 더 비싸기 마련이죠. 
사실 사진이 다른 전통적인 시각예술, 
특히 회화에 비해 낮은 취급을 받은 것도 
그 복제가능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폴라로이드 사진은 어떤 폴라로이드 사진이건 
세상에서 유일한 사진일 수밖에 없는데, 
왜 복제가능한 사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덜 가치있는 것으로 취급받을까요?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중첩돼 있겠지만, 
제가 제시할 수 있는 몇가지 가설은 이렇습니다. 

첫번째로, 폴라로이드 사진의 수명이 일반 사진보다 짧다, 
그러니까 화학적 변성으로 인한 사진의 손상에
더 취약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컬러사진이 진지하게 취급된 것이
70년대 이후이고 채 반세기가 안 되다보니, 
완벽하게 검증된 데이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시바크롬(cibachrome) 프린트가
가장 수명연한이 길다고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폴라로이드 사진의 표면이
일반 컬러사진이나 흑백사진보다 긁힘 등
외부요인에 취약한 건 사실인 듯합니다. 
아무튼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면, 
폴라로이드 사진에 투자할 사람도 많지 않겠지요. 
투자가치가 떨어질테니까요. 

두번째로, 폴라로이드 사진의 주제와 대상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주로 친구나 가족,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는 데 사용됐죠. 
아니면 미디엄 포맷이나 대형 포맷을 사용하는
프로페셔널 사진가들이 테스트 촬영용으로 활용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현대사진의 주된 경향 중 하나인 이 '일상'과 스냅사진 스타일이, 
사실 70년대 이전까지는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번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폴라로이드는 특히 2차대전 이후 70년대까지의, 
진지하게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든다, 는 식의 접근과는 판이하게 달랐죠. 
때문에 폴라로이드는 그저 가볍게 일상을 담는, 
아마추어들의 즐거운 놀이 쯤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세번째로, 아마도 두번째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텐데,  
대부분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렌즈의 성능이 
별 볼 일 없었다는 것입니다. 
초점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고, 
조리개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도 없었지요. 
더구나 렌즈의 해상도 역시 현저히 낮았습니다. 
따라서 사진의 완성도를 놓고 본다면, 
약간 조잡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네번째로, 바로 프린트의 크기 역시 
폴라로이드 사진이 경시되는 데 한 몫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회화나 사진 모두 작품의 크기와 가격이 비례하죠. 
폴라로이드 사진을 떠올려보자면, 네, 그렇습니다. 
상상하시는 그대로, 손바닥보다 조금 작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갤러리 공간이 아니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대개 20~50cm 거리에서 바라보는, 
사진의 내용 뿐 아니라 사진 감상의 경험 측면에서도 
매우 친밀한(intimate) 매체인 것이죠.  
더구나 사진가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크롭(crop)도 불가능했죠.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사진은 늘 정방형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것이지요. 

좀 장황했나요? 
하지만 이러한 제약들을 뛰어넘어,
폴라로이드를 사진작업에 적극적으로 이용한 아티스트들도 적지 않습니다. 
늘 제약은 또다른 창조를 낳게 마련이지요.
한계는 늘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폴라로이드의 그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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