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y Goldsworthy, Rain Shadow, St.Abbs, Scotland, June 1984

from http://www.goldsworthy.cc.gla.ac.uk/image/?id=ag_02944&t=1


비가 내렸다. 

그는 누워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그리고 일어나 사진을 찍는다. 

그의 ‘그림자’, 그의 실존의 ‘흔적’, 

‘그가 거기에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흔히 귀신이나 유령 따위의 초자연적 존재는

그림자도, 거울 속의 반영도 있을 수 없다. 

그림자와 반영은 오롯이 ‘지금-여기’의 

실존적 존재 만의 것이다. 


그러나 그 실존의 증거로서의 흔적은

그 흔적이 속한 존재와 마찬가지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삶만큼이나 삶의 흔적들 역시 

덧없는 것, 

아마도 서너 시간 뒤면 빗물이 말라 

앤디 골즈워디가 남긴 이 기묘한 ‘초상화’도

 찾아볼 길이 없어졌으리라. 


남은 것은 아티스트의 기억, 

온몸이 흠뻑 젖었을, 

마음 뿐만 아니라 몸으로 새긴 기억. 

혹은 그가 지도 위에 표시했을 지 모를

이 자리의 대강의 위치, 

그리고 위와 같은 몇 장의,

사진. 


이른바 ‘환경미술’이란 이런 것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남긴 것은 

그 자연과 함께 존재하고 사라진다.[각주:1]

당신은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 


그것으로 족하다. 

인간이 남기는 흔적이란, 

그렇게 종적없이 사라지는 게 마땅한 것. 

오노 요코의 말을 변용하자면

우리 머리 속에 들어있는 어떤 것도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각주:2]


아니, 인간은 이미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겼고, 

대부분은 아름답지 않으며, 

너무 오래 지속될 것이다,

자연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1. 심지어 환경미술의 대표작, 로버트 스미드슨의 거대한 Spiral Jetty조차 본래 강수량에 따라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에 잠겨 보이지 않게끔 의도됐던 것이다. 요즘 들어 기후변화로 부쩍 줄어든 강수량 탓에 거의 늘상 노출돼 있다고는 하나, 이 또한 자연의 변화에 따른 결과일 뿐. [본문으로]
  2. Look at the nature around you. Is the inside of your head prettier than that? – Yoko Ono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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