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별 볼 일 없는 풍경이다. 

깎아지른 기암절벽도, 광활한 평원도, 

수정처럼 투명한 호수나 드넓은 바다도 없이, 

휘어지고 뒤엉킨 나무와 덩굴들, 흔하게 보는 웅덩이와

심지어 버려진 물병들, 나무궤짝들, 정체불명의 물건들. 


어쩌면 사진 초보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냥 마구 찍어댄 사진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고, 

‘나도 저 정도 쯤은 찍는다’고 싶어질 지도 모를 사진. 


그러나 이 사진이 수록된 

존 고시지(John Gossage)의 사진집 The Pond는 

1985년 발간된 이후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사진집 가운데 하나이자, 

사진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진집 가운데 하나다. 


20세기 말 더이상 순수한 의미의 

wilderness(황무지, 광야)는 존재할 수 없을만큼

빈틈 없이 지구의 구석구석이 개발된 시대에 

과연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Walden Pond)’이 

우리에게 남아있는가, 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이 

바로 메릴랜드주 대형마트 뒤 버려진 

연못 주위 풍경을 찍어낸 

“The Pond”다. 


그러니까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저 멀리에

인위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공원이 아니라  

일상의, 우리가 사는 곳 주변의 잊혀진 풍경이 

진짜 야생(wilderness)인 지도 모른다는 것이며, 

이렇게 불명확하고 모호하며 

중심없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현대의 인류에게 허락된 

‘월든’인지도 모른다는 것. 


더욱이 이 사진집은, 

하나하나의 사진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사진집에 편집된 순서 그대로 감상되어야 한다. 

그게 존 고시지의 의도이며, 

그 순서에 따른 내러티브를 읽어내는 것이 

이 사진집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속칭 아주 멋진 “이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사진(들)이 과연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변, 그것도 매우 유려한 답변을 제공하는 사진집. 


책에 담긴 풍경은 

별 볼 일 없기에, 

바로 그렇기에, 


아름답다. 


John Gossage's The Pond from Landscape Stories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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